여행

2010. 1. 17. 12:56 from 카테고리 없음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재작년 발견으로 다가왔던 전주에 다시. 3박 4일의 일정으로.
애초에 먹고 쉬는 것에 방점을 둔 덕에, 실컷 자고, 실컷 먹고 왔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삶에 찌들어있었고, 지쳐있었고, 떠나고 싶었고, 쉬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 열망을 고스란히 발현한 여행.
그래서 여행은 늘 비현실적이였다.
일상에서 벗어나, 지속되는 날들과 간극에 있는.
그래서 여행에 다녀오면, 일상이 어그러진 느낌을 받았다. 내가 현실에서 비현실로 이동하는 며칠 동안 세상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 며칠을 단 몇시간 내에 다시 내가 통과하고 그 자리를 기억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그래서 여행에 다녀오면, 어딘가 불편했다.
다시 삶을 지속시켜야하는 일들과 그리고 그것을 잊고 싶었던 마음이 온전히 부딪쳐서.
언젠간 그래서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들도 있었다.
여행은 환상이여서. 신기루였기때문에. 삶에 자꾸 어깃장 놓아서.

전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 터 곳곳에 묻어난 전주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정이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하지만, 그 애정은 사실은 몸부림이였다. 전주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그 삶의 토대인 전주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 만들어놓은 몸부림.
그래서였을까. 전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잘 만들어진 영화세트장 같았다. 사람냄새가 아닌 인공의 냄새만 느껴졌었다. 이질감이였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가 전주에 더 많은 애정이 쏟아진 것이. 그 인공의 느낌에서, 비현실적인 여행이 가장 적합했으므로. 환상으로 삶을 외면하고 싶었으므로.

나는 다시 또 전주에 갈 것이다. 더 이상 볼 것도 먹을 것도 없지만, 여전히 전주에 가고, 다시 또 전주에 대해 예찬하고, 그곳에서 애써 사는 사람들의 몸짓은 외면하고. 그렇게 이방인이 되어. 여전히 서울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은 예감인가, 슬픔인가.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