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

2011. 3. 4. 21:56 from 카테고리 없음

얼마전 친구가 우리동네로 발령받았다. 가끔 우리집을 지나간다는 연락을 해왔고, 종종 봐야지 했었다. 어젯밤 친구가 10분만 보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피곤했고, 따박따박 다가오는 시험을 앞두고, 공부는 하지 않아도 나가기에는 불편한 상황이였지만, 친구가 그래도 보자고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었다. 야밤에 우린 집 앞 마트에서 친구 회사 물품을 샀고, 거기에 딸린 도너츠 가게에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셨다. 몇 번 고베를 마셨던 승진을 하게 됐고 올 한 해는 좋은 일만 있으려고 그러나 보다하고 축배를 들었다.

가끔 우리집 근처를 지난다는 연락을 했을 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직원 한 명이 회사의 대우에 불만을 품고, 퇴사를 하면서, 자신이 가르쳤던 70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학습지를 끊게했다는 내용.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회사는 변호사를 선임했고 법적조치에 들어간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유래없던 일이였고 친구는 회사입장에서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반응이였다. 아마도 회사는 이 일을 계기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퇴사하며 회사에 복수하는 일을 없애겠다는 발상이였겠지. 조금 뜸을 들이다 말을 했다.
회사 입장에서야 그렇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런 대우를 받았으면 섭섭하지 않았을까.
친구는 그렇게 보면 그렇지, 했다. 그렇게 보면 그렇지. 그래, 그렇게 보면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보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던 걸까.
누가 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었나.
씁쓸했다.

그리고 즐거운 대화를 더 이으며 우리는 아쉬운 만남을 뒤로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친구는 굳이 집까지 태워준다고 했고 나는 천천히 운동삼아 걷는다고 했다, 내 걸음으로 1분거리인데 굳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친구가 괜히 돌아가지말고 일분이라도 더 빨리가서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였다. 친구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라고 했고 그렇다면 타겠다고 해서 집까지 오는 그 짧은 시간.
문득 이제 차 없는 친구가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친구야, 이제 다 차가 있어, 나 빼고 다 운전을 하네.
친구는, 그게 제일 편한거라고 모두 데려다주고 넌 편히 오고 얼마나 좋으냐고 했었다. 그런가, 하고 웃었지만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였어.

좀 전에 오랜만에 저녁잠을 자다가 문득 몇해전 일이 떠올랐다.
반대서명을 하고 반대시위를 하며 회사에서 그와 관련된 일을 하던 때.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고 또 살아가고 싶어서 반대를 하며 그 괴리에 괴로워하던 때가.
씁쓸함과 쓸쓸함의 정체는 이거였다.

그 후로 오래 잊고 살았구나.
나의 원죄를.
그리고 그 쓸쓸함의 정체는 비단 물질이 아닌 생각이 저 편 너머로 향했기 때문인걸.
나 또한 그 길을 조금씩 건너고 있었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잊고, 왜 쓸쓸한지도 뒤늦게야 생각하게 된 걸.

이전보다 더 괴로웠으면 좋겠다, 더 오래.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