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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8.12 몽골
  3. 2015.07.08 우울
  4. 2015.07.02 하는 일 없이
  5. 2015.06.30 홀로살기

요즘

2015. 8. 29. 22:00 from 카테고리 없음

축복받은 실업이라, 열심히 놀고 있다. 늘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생각도 많이 나고, 대개 이유없이 보낸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해서, 아쉽기 그지없다. 실업기간이 끝나가므로. 다시 또 이런 시간을 언제 가질 수 있을지...그저, 내일이 두렵기만 하다. 다시 또 일상을 살아낼 일이 암담하다. 점점 늙기만 하는데...

 

며칠 서울에 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시간을 보냈는데, 마치, 결혼전 같아서 즐거웠다. 엄마랑 아빠랑, 시시콜콜 떠들고, 거실에 누워있던 저녁 시간이 너무 편해서, 너무 익숙해서, 너무 쓸쓸했다. 결혼생활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엄마와 농을 하는데, 엄마는 한술 더 떠서 내려가지말고 같이 살자고 했다. 나 또한 당연하다는 농으로 받아치고, 엄마는 자주 울었다. 혼자있는 걸 우울해하는 엄마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한 시간만 넘어가면 안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하다는 이유였다. 시시콜콜 울다, 스르륵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혼자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일이 남은 생을 지배하면 좋겠다. 하지만 결혼으로 파행된 확대된 가족이 남은 시간을 많이 지배하겠지.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이 오로지 내 몫으로 견뎌야할 일인데, 자주 버겁다.

 

남편과 일주일 넘게 떨어져있다 만나니, 약간 서먹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반가웠다. 자는 남편을 보며 이 남자와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사실을 기억했다.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하며.

 

원래 남편이 금요일날 서울에 갔어야했는데 배앓이로 인해 집에서 쉬었다. 오랜만에 종일 같이 있어 기쁘기도 했고, 부담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주욱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많았다. 남편은 무척 귀엽다. 좋으니까 귀엽게 보이기도 하겟지만 천성이 귀여워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나밖에 없다는 게 함정. 다행이겠지 ㅎㅎ

 

오늘은 남편이 서울에 교육들으러 가고, 혼자있다. 종일 누워있다 먹다 인터넷하다 쇼핑하다 아무것도 안했다. 애초 계획은 역시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인 거겠거니. 뭐, 그래도 이런 날이 아직 남아있고, 얼마 안남았으니, 나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전혀 성장하지 않는 삶을 살지만.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몽골

2015. 8. 12. 19:03 from 카테고리 없음

몽골에 다녀왔다. 6박 7일로. 작년에 이어 두번째였다. 작년에 아르항가이를 비롯해 쳉헤르 온천에 갔는데 올해는 홉스골에 다녀왔다. 

애초 예정은 국제선을 타고 울란바타르에 도착해서 하룻밤 묵은 뒤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홉스골에 가는 거였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행사에선 출발 2일전까지 홉스골에 가는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고, 대안으로 차량으로 이동했다. 여행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편의를 위해 애써주었고,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즐겁게 여행할 만발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가기 전에 강정에서 평화대행진에 참석했는데 그 여파로 감기몸살에 된통 걸려, 여행 내내 작은 일에도 짜증이 튀어나와서 그게 좀 곤란했다. 예전이라면 웃고 넘길 일에 자꾸 왜 이렇게 운이 없냐고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어쨌든 차량으로 이동하며 비행기로 이동했으면 보지 못했을 광경들이 우리를 흥분시켰다. 물론 그만큼 몸이 고되기도 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다르한, 에르덴트를 거쳐 홉스골로 향했다. 가는 길이 예정보다 계속 길어졌고, 애초 계획과 달리 중간중간에 도시에 들려 구경하지는 못했다. 쉬지 않고 달려도 하루에 12시간씩 도로에서 허비해야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이도, 몽골의 도로는 광활한 초원을 담고 있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자연 안에 내가 있다는 게 그토록 벅차게 하는 일이라니.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러시아 초원을 달릴 때도 그랬다. 드럽은 초원에서 내가 가진 문제들이 얼마나 사사롭게 느껴졌던지, 우주 속에 내가 있는 기분. 그 기분이 좀 더 구체화된 몽골. 몽골여행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2차선 도로로만 이어지는 뻔한 길에서, 어쩜 이리 다양한 초원을, 마음을, 하늘을, 담고 있을까. 그 자연이 바로 내 곁에 있는 기분.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몽골의 축복은 초원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늘보다 별이 더 많았던 밤하늘. 대형의 은하수. 곧잘 떨어지는 별똥별. 그저 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데, 왜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나는지, 도무지 낯선 일이다. 매일밤, 침낭을 가지고 나가 초원에 누워 별을 보았다. 한시간 두시간씩 보아도 지루하기는 커녕 점점 더 즐거워지기만 했다. 몽골여행은 정말 내게 축복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내내, 초원과 밤하늘과, 하늘과 호수에 감격할수록, 이 자연이 몽골인에게 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이 충만한 마음과 더불어, 아무 자원도 없는 척박한 자연. 몽골마트에 가면, 자원이 없는 나라가 생활에 제공하는 물품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이 자연은 축복일까, 불편일까. 우리가 환호하는 이 자연이 몽골인에겐 어떻게 다가올까.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 택한 유목의 생활이 자본이 점령한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석될까, 유지될까. 싶어 마음이 내내 복잡했다. 이 자연에 환호하는 내가 과연 건강한 일인지도. 몽골의 자연이 유지되길 바라는 건, 자연을 소비하기 위한 나를 위해서가 아닌지. 그리고 한국이 자원이 참 많은 나라나는 것도 배운다. 풍요로운 국가에서 태어나 자랐구나,는 감사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 다시 또 몽골에 찾아가고, 여전히 몽골의 대자연에 감격하고, 그리고 또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예상에 벗어나지 못하고.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우울

2015. 7. 8. 13:04 from 카테고리 없음

며칠, 아주 몇주, 아니 몇 달 우울하였다.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 우울하였다. 낯선 관계가 우울하였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고,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항상 옆에 남편이 있었음에도 넋나간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별 거 아닌 일에 매달리며,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다시 우울하였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러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친 예민함이 자주 남편을 힘들게 만들 때마다, 남편은 내게 상냥했다. 다정하고 자상하게 묵묵히 내 고통을 받아주었는데도, 내가 인정받지 못한 기분이었다. 믿음은 내 안에 있는 것인데 자꾸 남탓만 했다. 며칠은 아예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를 좀 더 구석으로 밀어넣고 나를 좀 더 벼랑 끝에서, 나를 내 안으로 계속 침몰시켰다. 불행하게도 편안했다. 그러므로 우울하다. 그림자 같은 우울.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하는 일 없이

2015. 7. 2. 14:42 from 카테고리 없음

노닥거리며 살고 싶었던 내가 유일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도서관 가서 책을 고르고 집에 와서 읽는 것이다. 책 읽는 일이 좋았고, 책 얘기를 하는 게 즐거웠고, 책을 고르는 일이 황홀했다. 타인에 대한 기대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나로서는 유일하게 즐겁고 행복했던 일. 무엇을 기대하게 했던 일, 살아있음이 살아갈 날이 남았다는 게 그렇게 나를 벅차게 할 수 없었지.

남은 생, 그렇게만 살고 싶은데. 그러기위해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없겠지. 그런 삶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겠지, 인정은 커녕 존중 받기도 힘들테지. 그래서 조금 슬프다.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홀로살기

2015. 6. 30. 15:36 from 카테고리 없음

어제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 중에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남편을 딛고 홀로서기 하는거 아니냐고 였나, 하여튼 남편을 도구로 삼아 홀로서기 하려는 거 아니냐 뭐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홀로서기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물론 농담을 주고 받다 나온 말이므로 심각할 말도, 함의의 말도 아닐 거 같지만, 요즘 자주 홀로서기를 고민하고 있는 나로서는 움찔할 수 밖에.

 

제주도에 7박8일 여행을 다녀오고,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얼마나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절절히 깨달았다. 아주 오래 같이 사는 것을 지향했는데, 결국 이렇게 돌아오고 말았다. 혼자 살고 싶다. 고.

 

그래서 자꾸 떠나고 싶다. 혼자, 홀로, 어딘가로, 자유롭게, 속박당할일도 걱정할일도 부담스러운일도 책임질 일도 없이, 떠나고 싶다. 간단한 관계만 만들고 싶다. 영향을 주고 받아도 언제고 헤어질 수 있는 단순한 관계만 지향하고 싶다. 이미 결혼을 했는데.

 

큰일이다.

 

주말에 서울을 홀로 오가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편안했던지.

 

이십대 후반에 홀로 떠난 여행에선 누군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일이, 그래서 함께 있는 일이 그토록 황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의 삶을 부정하게됐는데 어째서 난 또 이렇게 되버린걸까.

 

지난주부터 거의 집에 있었다. 앞으로도 거의 집에 있고 싶다.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고 누구하고도 대면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 저 너머로 소식을 들으며 살고 싶다.

 

파블로네루다의 시에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구절이 있다. 그 외로움은 고단이나 힘겨움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나 편안함일 수 있다. 나는 터널처럼 외롭고, 나는 터널처럼 사람들을 지나보내고, 나는 터널처럼 홀로이고 싶다.

 

그리고 이 갈망이 이 순간만 남길, 바로 휘발되길 아쉽게도 바란다.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