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 없이

2015. 7. 2. 14:42 from 카테고리 없음

노닥거리며 살고 싶었던 내가 유일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도서관 가서 책을 고르고 집에 와서 읽는 것이다. 책 읽는 일이 좋았고, 책 얘기를 하는 게 즐거웠고, 책을 고르는 일이 황홀했다. 타인에 대한 기대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는 나로서는 유일하게 즐겁고 행복했던 일. 무엇을 기대하게 했던 일, 살아있음이 살아갈 날이 남았다는 게 그렇게 나를 벅차게 할 수 없었지.

남은 생, 그렇게만 살고 싶은데. 그러기위해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없겠지. 그런 삶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해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겠지, 인정은 커녕 존중 받기도 힘들테지. 그래서 조금 슬프다.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홀로살기

2015. 6. 30. 15:36 from 카테고리 없음

어제 남편과 도란도란 얘기 중에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남편을 딛고 홀로서기 하는거 아니냐고 였나, 하여튼 남편을 도구로 삼아 홀로서기 하려는 거 아니냐 뭐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홀로서기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물론 농담을 주고 받다 나온 말이므로 심각할 말도, 함의의 말도 아닐 거 같지만, 요즘 자주 홀로서기를 고민하고 있는 나로서는 움찔할 수 밖에.

 

제주도에 7박8일 여행을 다녀오고,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얼마나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 절절히 깨달았다. 아주 오래 같이 사는 것을 지향했는데, 결국 이렇게 돌아오고 말았다. 혼자 살고 싶다. 고.

 

그래서 자꾸 떠나고 싶다. 혼자, 홀로, 어딘가로, 자유롭게, 속박당할일도 걱정할일도 부담스러운일도 책임질 일도 없이, 떠나고 싶다. 간단한 관계만 만들고 싶다. 영향을 주고 받아도 언제고 헤어질 수 있는 단순한 관계만 지향하고 싶다. 이미 결혼을 했는데.

 

큰일이다.

 

주말에 서울을 홀로 오가면서 그 시간이 얼마나 편안했던지.

 

이십대 후반에 홀로 떠난 여행에선 누군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일이, 그래서 함께 있는 일이 그토록 황홀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의 삶을 부정하게됐는데 어째서 난 또 이렇게 되버린걸까.

 

지난주부터 거의 집에 있었다. 앞으로도 거의 집에 있고 싶다. 아무하고도 만나지 않고 누구하고도 대면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 저 너머로 소식을 들으며 살고 싶다.

 

파블로네루다의 시에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는 구절이 있다. 그 외로움은 고단이나 힘겨움이 아니라, 삶의 원천이나 편안함일 수 있다. 나는 터널처럼 외롭고, 나는 터널처럼 사람들을 지나보내고, 나는 터널처럼 홀로이고 싶다.

 

그리고 이 갈망이 이 순간만 남길, 바로 휘발되길 아쉽게도 바란다.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결혼은 타인과 사는 방법을 배우는 행위라는 걸, 매순간 절절히 느낀다.

첫 곤혹은 같은방쓰기였다. 타인과 계속 한 방에 머무는 일이 수많은 갈등과 배려, 신경과 예민함을 발동하는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여행 등을 이유로 타인과 함께 방을 쓰는 일은 끝이있기에 불편함을 참을 수 있었으나, 결혼 후 한방쓰기는 끝없는 일이므로, 갈등과 신경쓰임, 배려와 예민함이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예상이 나를 너무 어렵게했다. 타인과 생활리듬을 맞춰가거나 함께하는 일은 몹시 피로했다. 뿐만 아니라 오직 나만의 공간이라고 믿은 곳에 누군가와 평생 함께 있다는 게, 이제 나만의 공간이 없구나...그런 절망이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생체리듬을 어떻게 맞춰가야할지....이 다름을 어떻게 수용해야할지...이 변화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지...몇달은 정말 제정신으로 하루를 살지 못했다. 항상 피곤하고 예민하고 곤두서졌다. 두어달이 지나자, 그나마 익숙해져 잠도 자고, 예민함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결혼이 이런거구나. 타인과 함께 사는 과정이구나. 사회에서 결혼이 필요한 이유는 타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배우는데 있구나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다행이 요즘엔 각방을 쓴다. 수면취향이 달라서 시작된 일이라고 하기엔...내가 계속 몰래 다른 방으로 가 자면서 생긴 일이구나...어쨌든!...밤이 되면 혼자 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를 편하게 하는지, 정말 평안하다. 안방에서 서식하는 내게 이 곳이 정녕 나만의 방은 아니지만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만으로 비록 그 시간은 거의 수면으로 채워진다해도, 나를 평화롭게 한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일생 같은 방을 쓰는 부부들께 존경을 보낸다. 당신은 성격이 아주 부드러운 사람이군요. 저는 까칠해서 그게 잘 안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존경합니다. 나같은 사람은 독립해서 장기간 혼자살았다면, 타인을 배려하거나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채 인생을 마감했을거라는 겁이 난다. 시시때때로 함께 살기에 대한 불편함이 나를 사회인으로서 성장시키므로 결혼하길 잘했다. 특히 거주지를 이전함으로서 배운 곤란함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더 넓힐 수 있었다. 고맙다. 나는 때때로 힘들지만.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