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실업이라, 열심히 놀고 있다. 늘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생각도 많이 나고, 대개 이유없이 보낸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척 소중해서, 아쉽기 그지없다. 실업기간이 끝나가므로. 다시 또 이런 시간을 언제 가질 수 있을지...그저, 내일이 두렵기만 하다. 다시 또 일상을 살아낼 일이 암담하다. 점점 늙기만 하는데...
며칠 서울에 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오랜만에 시간을 보냈는데, 마치, 결혼전 같아서 즐거웠다. 엄마랑 아빠랑, 시시콜콜 떠들고, 거실에 누워있던 저녁 시간이 너무 편해서, 너무 익숙해서, 너무 쓸쓸했다. 결혼생활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엄마와 농을 하는데, 엄마는 한술 더 떠서 내려가지말고 같이 살자고 했다. 나 또한 당연하다는 농으로 받아치고, 엄마는 자주 울었다. 혼자있는 걸 우울해하는 엄마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한 시간만 넘어가면 안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하다는 이유였다. 시시콜콜 울다, 스르륵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혼자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일이 남은 생을 지배하면 좋겠다. 하지만 결혼으로 파행된 확대된 가족이 남은 시간을 많이 지배하겠지. 내가 선택한 일이기에 누굴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이 오로지 내 몫으로 견뎌야할 일인데, 자주 버겁다.
남편과 일주일 넘게 떨어져있다 만나니, 약간 서먹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반가웠다. 자는 남편을 보며 이 남자와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한 사실을 기억했다.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하며.
원래 남편이 금요일날 서울에 갔어야했는데 배앓이로 인해 집에서 쉬었다. 오랜만에 종일 같이 있어 기쁘기도 했고, 부담되기도 했다. 오랜만에 주욱 누군가와 같이 있다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많았다. 남편은 무척 귀엽다. 좋으니까 귀엽게 보이기도 하겟지만 천성이 귀여워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나밖에 없다는 게 함정. 다행이겠지 ㅎㅎ
오늘은 남편이 서울에 교육들으러 가고, 혼자있다. 종일 누워있다 먹다 인터넷하다 쇼핑하다 아무것도 안했다. 애초 계획은 역시 전혀 실행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인 거겠거니. 뭐, 그래도 이런 날이 아직 남아있고, 얼마 안남았으니, 나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전혀 성장하지 않는 삶을 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