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하다

2015. 9. 30. 11:37 from 카테고리 없음

아랫글이 무색하다. 지금 감정상태에서. 명절을 보내면서 싸웠다.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을.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책구절이 떠나지 않는다. 사랑을 포기하려는 시도는 그 포기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사랑이 사소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라고 했던가. 


정말, 봄날은 간다.

끔찍하게.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산소

2015. 9. 14. 16:22 from 카테고리 없음

어제 산소에 다녀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 결혼 후 인사드리고 싶어 아빠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아빠는 아빠집에서 우리는 남원에서 출발했다. 남편이 남원근처에서 수련회가 있어 거기 갔다 갔기때문. 남원에서 아버지 고향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고속도로는 몹시 조악했고, 고속도로로 부르는 게 합당한지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중앙분리대도 없는 1차선 도로. 고불고불한 도로, 종종 60km 속도제한이 있는 이 길이 과연 고속도로인가. 유료로 이용이 합당한가. 하는 의문. 전라도에서 살면서, 전라도에서 출발하는 모든 시설이 다른 도시에 비해 후지다는 걸 경험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이런 경험 속에 체념이 자리잡았을까, 패배가 익숙할까, 싶다. 어쨌든 아버지 고향, 경상북도 영양으로 출발! 가는 길에 대구에서 하룻밤을 자고 출발했다. 하루로 왕복하기엔 너무 멀었다. 대구에 가까울수록 고속도로 사정은 빛의 속도로 좋아졌다. 넓고 부드러운 도로. 중앙분리대가 있는 5차선의 도로. 대구 터미널 모텔에서 하룻밤 자고, 주인분에게 양해를 구한뒤, 차를 주차하고 버스터미널에서 영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가 막혔지만 운전기사분께서 편법으로 운행해, 도착시간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운전 후 휴식이 충분하다면 운전기사분도 정석대로 운행했겠지 싶어 씁쓸. 영양터미널에서 택시를 불러 할머니 산소 앞에서 내렸다. 아빠가 올해 유사를 맡아, 윗조상의 산소에 벌초하러 미리 가 계셨기에 할머니 산소 앞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동네 산책을 하는데, 햐, 여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몰랐다. 초등학교 때 놀러다녔던 기억을 되살려 낙동강도 찾아가고 동네를 걷는데 정말 아름답고 예뻐서, 고즈넉한 시골이 갖는 경치를 실컷 감상했다. 이곳에 댐 건설이 몇년째 화두인데, 그저 이대로 놔두었으면.

깊은 시골이라 개발되지 않아서 갖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때, 여기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개발에 갖는 열망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매번 자연을 감탄할 때마다 모순에 휩쌓인다. 그 자연으로 삶을 충만하게 이끌어가는 시대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끔 산소만 들렸다 갈 때는 몰랐는데 영양에 많은 구경거리가 있었다. 측백나무숲에서 정원에서, 이번에도 급하게 산소만 들려 제대로 구경해보진 못했다. 남편은 언제 놀러오자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놀러오자고 뽐뿌를 ㅎㅎ 그때 할머니 산소를 한 번 더 갈 수 있겠지. 기쁘다.


아버지가 도착하고 할머니 산소에서 약식으로 차례를 지냈다. 할머니 품에서 자란 나는 괜히 코끗이 찡했다. 어릴 때 참 커보이던 산소가 이렇게 자그맣다니. 할머니도 이렇게 자그만하셨나 싶고. 그 할머니 덕분에 발이 땅에 안닿게 자랐는데. 항상 업어달라, 안아달라, 바닥에 앉을 때도 할머니 무릎에...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다. 인자한 할머니 품에서 어리광만 부리며 큰소리 한 번 안듣고 자라서, 내가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ㅋㅋㅋ 버릇없게 살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도 할머니 품에서 자라고 싶다;;;; 물론 그 때는 할머니 덜 힘들게 혼자 잘 걸으면서.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ㅎㅎ


할머니께서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고. 이제 할머니한테 인사까지 드렸으니, 아무리 남편이 미워도 이 사람과 어떻게든 일생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들고 ㅋㅋ 이제 더는 물릴 수 없겠다 하는 아쉬움도 들고 ㅋㅋ


남편의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신데, 그래서 외할머니께 인사하러 다닌다. 남편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남편의 외갓댁에 갈 때면 왜 여기까지 내가 가야하나 싶어 욱할때곤 했는데, 돌아오는 길이면 나도 우리 할머니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가서 인사드리고 안부 묻고 싶겠냐 싶어 살아계실 때까지 가게 될 때 좋은 마음으로 가야지 다짐하게 된다. 막상 가면 욱하지만;; 할머니도 남편 외할머니 처럼 살아계심 좋을텐데...정말. 올해 추석에는 남편 외갓댁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가서 용돈 드려야지. 나의 할머니처럼, 남편에게도 소중하고 애틋한 할머니임을 잊지 말자. 그래야 나도 편하고 남편도 편하고 모두가 좋다는 것도.


할아버지 산소도 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어릴 때 돌아가셨기에, 뵌 적은 없기에 사실 큰 감흥은 없다. 할아버지 산소는 험한 산을 타야한다. 매번 힘들게 올라갔는데 올해는 체력이 좋아졌는지 예전보다 쉽게 올라갔다. 다행이다. 어제 사촌오빠가 미리 와서 벌초를 해놓고 갔다고 해서 편히 올랐고, 약식으로 차례만 지내고 내려왔다. 다행이다. 올라가서 차례를 지낼 때 과일을 깎는 칼과 수저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당황했는데 차례를 지내고 내려오니, 주차한 곳에 있는 툇마루에 칼과 젓가락이 있어 당혹스러웠다. 왜 이것만 여기 빠져있지? 도무지 모르겠다. 산에서 내려오다 남편이 미끄러졌는데, 그 때 칼이 있었으면 다쳤을지도 몰라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칼을 미리 빼놓았나보다 했다. 안그럼 이게 빠질리가 없으니까! 음식을 잘 드셨는지 모르겠다 ㅠㅠㅠㅠㅠㅠㅠㅠ 할머니 차례 지낼때도 젓가락을 못찾았는데 ㅠㅠ 담에는 꼭 잘챙겨야지.


그리고 문중 어른들과 점심식사 후, 집으로. 택시를 왜 타냐며 터미널까지 태워주신다던 아빠는 약주 한 잔 하시더니 택시가 빠르고 좋다고 ㅋㅋㅋㅋㅋ 터미널에서 우리가 타려던 버스가 운행중지 되어 다음차를 기다리며 근처를 산책하는데 여기도 예쁘더라, 황금벌판이 이런거구나 싶고 ㅎㅎ 그렇게 다시 집으로 왔다. 대구로 오는 길까지 차가 많이 막혀서 2시간 30분이면 올 거리를, 4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 카스텔라사서 모텔에 주차하게 해주셔서 고맙다고 드리고 ㅎㅎ 여전히 벌초를 모두 하는구나 싶어 놀랐다. 거의 따라가지 않기에, 다들 안하고 사는 줄...부끄럽구나.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벌초하는 전통은 유지되나보다. 우리 친정집도 고민이 많은 거 같다. 문중에 있는 수많은 산소를...이제까지는 어른들이 길을 아니 벌초해왔는데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길을 알까 싶고. 아버지 세대가 끝일 것 같은데...큰집은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친가에 조선시대 때 공주가 시집 온 적이 있는데, 그 묘는 여전히 잘 관리되는 거 같다. 가본 적은 없지만, 할머니 산소 옆이라는데 다른 조상들 묘와는 다른 거 같다. 단지 신분이 공주였다는 이유로 몇 백 년 후에도 후손들이 특별히 관리한다니. 이게 뭔가 싶었다. 현재 입지 좋은 곳에 있는 정자나 정원들도 다...농민들의 피와 땀이었을테니 자주 내가 환호하는 정체가 무엇일까 싶다. 


어쨌든 시댁도 친정도 조상님들 산소에 다 다녀왔으니, 일단 마음이 후련하다. 


서로에 대한 애정, 삶에 대한 애정, 사회에 대한 애정,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역사에 대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다!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

생일

2015. 9. 8. 10:45 from 카테고리 없음

오늘은 남편 생일이다. 어젯밤 끓여놓은 미역국과 잡채와 풋고추된장무침을 꺼내 아침을 함께 먹었다. 평소엔 늘어지게 혼자 자곤했는데, 생일날 아침이니 오늘만큼은 일찍 일어나야지 했다. 그래봤자, 간신히 일어나, 남편이 밥을 차리는 동안 힘겹게 앉아있었지만. 어젯밤 미리 음식해놓길 잘했다. ㅎㅎ

 

어젯밤에 몰래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를 하는도중, 남편에게 전화왔다. 집 앞인데 잠시 산책하자고. 선선한 날씨가 산책하기 딱 좋았던 모양. 끓이던 미역국을 다 끓이고 가야겠기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니, 남편이 그새를 못기다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후다닥 챙겨입고, 밤산책. 아파트 입구에서 이차선만 건너면 천변인데, 항상 밤산책은 이차선을 건너는 법이 없다. 쓰고나니 이상하네. 다음엔 건너봐야지. 하자지구쪽을 설렁설렁 걸었다. 이 아파트는 어떻고 저 아파트는 어떻고. 이걸 사자, 저걸 사자.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거의 다 대출이면서, 항상 어디 아파트를 살지 고민한다. ㅎㅎ 11시가 넘었는데도 문 연 카페가 있길래 들어갔다. 블루베리쥬스와 치즈갈릭토스트를 시켜 먹었다. 결혼 전에는 둘이 커피숍 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막상 결혼하니 커피숍은 거의 안가게 됐다. 밥은 여전히 자주 사먹는데도. 오랜만에 커피숍에서 시시콜콜 수다를 떨고, 집으로 오니 12시. 생일축하해, 속삭인다.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남은 생일도 오늘처럼 항상 축하하며 살자, 서로의 태어남을 축하하며, 고마워하며, 안도하며, 그렇게 살면 좋겠다.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을 보내고나선 마트에 잠시 들러 제과에 필요한 용품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리고 브라우니를 만들어야지 했는데, 역시 나가기 귀찮다. ㅎㅎ 내가 뭐 그렇지. 이따 밤에 장보면서 같이 사야겠다.

 

살다보면 시시콜콜 토라질 일도 많고 감정 상할 일도 많다. 불행이도 속이 좁은 나는 자주 가슴에 담아두곤 한다. 훌훌 털어버리는 너른 사람이 되지 못해서. 거의 평온하게 살지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감정들이 나를 괴롭히고, 상대까지 괴롭히곤 한다. 관계가 짙어질수록, 옅은 관계가 얼마나 편한가, 쉬운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된 관계에서 오는 부침없는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가는 기간이 많이 곤혹스럽다. 나이는 계속 늘어나는데, 마음은 점점 더 좁아지는 거 같다.

 

어젯 새벽에도 괜히 이런저런 일들떄문에 속이 내키지 않아서, 속상했다. 자고 일어나면 별 일 아닌 일을.

오늘은 생일이니, 좋은 것만 생각해야지.

 

그래서 cocoe 의 my samantha 를 들으며 너는 남편이라고 세뇌하며 아침내내 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난데없이낙타를 :